게임이론을 통한 공정위 담합논리를 무력화시켜 무혐의결정을 받았으며, 이후 공정위는 그 반성으로 경제분석팀을 창설했다.
일반적으로 공정위가 조사한 대규모 담합사건이 공정위 전원회의에 회부된 경우에 무혐의가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공정위 전원회의 입장에서 공정위 심사관이 이야기를 좀 더 신뢰있게 듣기 마련인 이유도 있거니와 묵시적 담합도 인정되고 담합의 추정도 인정되는 법리 때문에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해도 전반적으로 담합의 결과를 보이면 유죄가 됩니다.
제가 2년차 때 태평양에서 지금은 그나마 공정거래 업무를 하셨던 지금은 국회의원 하시는 오기형 변호사님이 해외연수를 가시게 되면서 이 사건을 담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책임 파트너였던 표인수 변호사님(서울대 경제학과 선배)께서 저에게 한번 해 봐라고 했고 제가 이를 담당해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무혐의는 불가능하지만 과징금을 낮추는 선처를 바라는 변론방향이었습니다.
당시 선두 기업이었던 대교가 가격을 올리면 그 다음 학습지 사업자들이 동조하여 가격을 올리는 행태를 수년간 반복해 왔는데, 공정위가 이를 묵시의 담합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맹점을 찾아내었습니다. 바로 제가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동하면서 배운 게임이론과 형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대교가 먼저 가격을 올리는 행동이 가장 유리한 행동조합, 즉 우월전략이라는 것입니다.
몇년 전 매킥지의 대교 전략컨설팅 보고서에 의하면, 대교가 시장 포지셔닝에 특징이 없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대교의 품질과 소비자 평가라면 충분히 고품격 학습지로 인식될 수 있는데 현재 가격이 평균적이어서 고품질 이미지가 약하다고 지적하면서 차라리 현재보다 가격을 높여 고가격-고품질로 포지셔닝을 바꾸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교가 그 조언을 받아들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저는 대교가 그 조언대로 시장 포지셔닝을 바꾸기 위하여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취하였는데 이에 대해 경쟁사업자가 어떤 선택을 하면 대교에게는 이익인 우월전력이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교가 가격을 올렷는데 상대방이 가격인상을 동조하지 않으면 대교는 시장 포지셔닝 변경을 통한 장기적 우위 확보의 목적을 달성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덩달아 올리면 시장 포지셔닝은 변경되지 않지만 가격인상으로 수익성 제고라는 효과가 생긴다. 결국 대교로서는 가격인상 이외에 할 수 있는 더 우월한 전략이 없어서 가격인상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 덩달아 가격을 따라 올린 경쟁자들 역시 게임이론으로 설명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공정위가 학습지 사업자 간의 담합 합의를 한 구체적인 문서나 합의서를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였는데, 제가 담합 목적이 아니라 전력 포지셔닝 변경이라는 합법적 경영목적 달성을 위하여 한 가격인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었지요.
전원회의 장에서 이런 주장을 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 하자 그야 말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궤변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만 심사관은 저의 게임이론적 분석과 설명에 대해 전혀 반박을 못했습니다. 결국 전원회의는 전래없이 무혐의결정을 내렸습니다.
공정위 심사관측에서는 완전히 예상치못한 패배를 당한 것이고, 이후 공정위는 경제분석팀을 창설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태평양에서도 경영진이 공정거래팀을 창설하였습니다.
그 이후 저는 공정거래 사건에 대하여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논리개발과 서면작성, 완성에까지 당시 2년차였던 제가 거의 다 알아서 했고 파트너의 도움이나 기여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